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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더 좋은 몫

위례성모승천성당 0 42 10.07 10:00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더 좋은 몫


제 1독서 : 갈라 1,13-24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복    음 : 루카 10,38-42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가끔 신자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갈 기회가 있습니다. 모처럼 여러 이야기도 나누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은 마음으로 방문을 하면 정작 초대한 사람은 말 한마디 못하고 음식 준비로 분주하기만 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것 같습니다. 마르타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했는데 음식 만들기와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잘 모시려면 바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항상 제자들의 무리와 함께 다니셨으므로 한두 명의 식사 준비가 아니었을 겁니다. 일손은 부족하고 마음은 급한데 거듭 도와달라고 청해도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을 뿐입니다. 참지 못한 마르타가 예수님께 와서 하소연을 하지요.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루카10,40) 
   예수님께서는 음식 준비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시며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좋은 몫을 그냥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해야할 많은 일들이 있고 필요한 것도 많습니다. 항상 분주하지요. 그런데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몫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리고 초대한 손님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것, 이 모두가 다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가장 좋은 몫은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로 구분되는 두 모습은 우리 성당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확연하게 활동 중심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기도 중심인 사람도 있습니다. 둘 다 바른 모습은 아니지요. 하느님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하지 않으며 활동에만 중점을 두는 사람은 상처받기 쉽습니다.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고 사소한 서운함에 쉽게 노여워하며 일이 끝나면 오히려 그 전보다도 못한 상태로 퇴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 중심의 활동이 아니고 자기 지향대로 움직인 결과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성체 조배실만 열심히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른 모습이라고 할 수 없지요. 세상을 떠나 하느님 안에서만 살고자 하는 수도자들도 기도하고 일을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전통 안에서 1,500년 동안 전해 내려오고 있는 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수도자들조차도 기도 못지않게 활동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기도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을 활동 안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외딴 곳에 가서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을 활동하시며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시간은 틈틈이 기도하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하느님을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치유하는 일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활동이 더해져서 우리의 신앙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오히려 천주교와는 동떨어진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수도에만 정진하는 소승불교가 있고, 대중을 구제하는데 전념하는 대승불교가 있습니다. 기도와 활동이 함께 어우러진 우리 천주교는 기도로써 자신을 닦고 동시에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합니다. 마치 자기가 수도자인양 기도만 하고 봉사 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이지요.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더 좋은 모습으로 말씀하신 부분이 마리아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신자와 비신자가 구분되는 것은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신자나 비신자나 똑같이 여러 사회 봉사와 다양한 활동을 하지요.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기도하며 활동하는 신자의 삶과, 기도 없이 활동만을 하는 비신자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기도하지 않는 활동은 무의미합니다. 사회 봉사자 정도의 수준이지요.


   우리는 많은 경우에 정신없이 살다보면 기도에 소홀해지기가 쉽습니다. 기도에 소홀해지면 그 결과 사소한 일로 이웃과 다투게 되고 작은 부분에도 상처를 받기가 쉽습니다. 옹졸해지지요. 예를 들어 사목자가 어떤 봉사를 요청했을 때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받아들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뿐 받아들이지 않지요. 사목자의 눈에는 아주 명확하게 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받아들이면 거기에 하느님의 큰 은총이 함께 한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마리아의 몫을 강조하심으로써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목자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묵상하지 않은 채 전달하는 말은 연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많이 기도하고 더욱 묵상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마르타와 마리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작은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내가 너무 활동과 세상의 일에만 치우쳐 있었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좀 더 기도하고 고요히 머물러 묵상하는 시간을 늘려야 하겠습니다. 그 바쁘신 중에서도 외딴 곳에 가셔서 새벽까지 기도하신 예수님은 바로 그 기도의 힘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여러 활동을 하실 수가 있으셨지요.
   기도하고 활동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