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성모승천성당
홈 > 신부님강론 > 매일미사강론
매일미사강론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위례성모승천성당 0 51 10.09 11:03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 1독서 : 갈라 2,1-2.7-14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복    음 : 루카 11,1-4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오래 전에 부유한 한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집안에 들어서서 둘러보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수도자와 성직자들이 아침저녁으로 바치는 기도서인 「성무일도」가 5권이나 놓여 있어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온 가족이 성무일도를 바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인 두 자녀도 부모와 함께 기도를 하고 어쩌다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날은 저희들끼리 성무일도를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완전히 수도원이네!’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합니다. 부모의 모습이 곧 자녀의 모습이지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궁금하다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툭하면 싸우고 욕지거리를 한다면 내가 매일 욕하고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자녀들이 주일 미사에 잘 빠지고 성당에 소홀히 한다면 부모인 내가 미사에 잘 빠지고 성당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돈, 돈’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으면 내가 평소에 ‘돈, 돈’하고 살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11,1)
   오늘 복음에서 제자 하나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지요.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기도하고 싶은 원의를 갖게 된 것입니다. 가르침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지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외딴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기도 안에서 하루 하루의 삶을 하느님과 잘 승화시키시는 스승의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승님 살아 생전에는 잘 하지 못했던 제자들도 후에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 길을 따라 가게 되어 있지요. 그것이 산교육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미사 때마다 바치고 있는 주님의 기도와는 좀 다릅니다. 미사 때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 복음에 있는 주님의 기도를 많이 본 따서 만든 기도문이고, 오늘 주님의 기도는 루카 복음의 기도문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많을 때는 수십 번씩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미사 때마다, 또 묵주기도를 드리며, 그리고 아침저녁 기도 때 등등 수없이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고, 신자라면 누구나 이 주님의 기도를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기도문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기도하고 있으며, 주님의 기도를 바칠 자격은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들 행동이 뒤따르지 않은 채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공허한 울림이 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지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감히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도 하느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여라.”(탈출3,14)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들려주신 답변으로 감히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성경학자들이 하느님을 표현한 방식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불경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대통령 이름도 쉽게 호명하며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만약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고 가정할 때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ㅇㅇㅇ씨.”하고 대통령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실례를 범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고 또 어려운 어른의 존함을 함부로 부른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또한 그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입니까?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입니다. 집 나간 아들을 애타는 부정으로 그리며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는 아버지, 바로 이 분이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바로 그 분이지요.
   ‘아버지’라는 이 한 마디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받아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은혜를 입고 있음을 그 한 구절에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욕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입으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하지만 속마음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 아들의 대학 합격을 꼭 이루어 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물론 하느님께 나의 소원을 기도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지향을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전할 리가 없지요. 모두가 다 성공하고 편히 잘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욕심이 부딪힌다면 세상은 곧 무너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위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 됩니다.

   저는 어린이들이 고백성사를 보면 착한 일을 하고 칭찬을 몇 번 하는 것을 보속으로 내줍니다. 주님의 기도는 물론 기본으로 바치게 하지요. 어른들도 주님의 기도를 보속으로 받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 대한 미움을 가슴에 그대로 담고 있는 사람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나는 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는 자가 어떻게 하느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기도를 바치려면 먼저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우리는 참으로 유혹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도처에 유혹거리가 넘쳐나고 있지요. 이 시대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육신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내 욕망만을 채우려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혹 또한 넘쳐납니다. 그래서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쉽게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면 나쁜 환경에 아예 몸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내기 골프를 좋아하고 더 나아가 모르는 남자나 여자들과 쉽게 어울려 놀기를 좋아한다면 그와는 친분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 나 또한 곧 그렇게 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듯이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도 모르게 나쁜 일에 휩쓸리게 되어 있지요. 유혹에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많이 배우고 내 삶이 발전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신자 중에 자매님 한 분이 열심히 <100권 신심 서적 읽기>에 동참하며 책을 읽는데 신자 아닌 남편이 옆에서 그대로 다 따라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이웃을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 내 인생에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다소 모자라는 점이 있더라도 아주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이것저것을 다 경험해야 풍부한 사목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더러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좋은 환경은 스스로 절제하고, 유혹으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이 거룩함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시대는 가까이에 유혹 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 남편과, 아내와 어떻게 사느냐, 이제 그만 이혼해라.”
   이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코 복음적이지 않은 이런 친구들과는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우리가 청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은총을 주셨고, 그 아버지가 얼마나 인자하신 분인지를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하며, 용서를 청하기 전에는 먼저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이웃과 환경 안에서 살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더욱 정성껏 바치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