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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주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위례성모승천성당 0 33 10.14 10:26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주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1독서 : 갈라 4,22-24.26-27.315,1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복 음 : 루카 11,29-32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 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납니다. ‘소 귀에 경 읽기란 뜻이지요. 글을 모르는 소에게 아무리 글을 읽어줘도 소용이 없음을 두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답답한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와 같은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깨우치려고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말씀과 기적을 행하시지만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또 다른 기적을 바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여러 기적들을 행하시지만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욕망만을 바랄 뿐입니다. 답답한 그들의 태도에 예수님께는 화가 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예를 들어서 군중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11,29)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루카11,31)

두 예의 의미를 살펴보며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누르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라는 도시는 대단히 타락한 이방 도시로 그 곳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나라는 예언자를 보내어 그 곳을 구원하고자 하셨고 요나는 니네베를 찾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3,4)

요나의 외침을 들은 니네베 사람들은 곧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습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자루을 입고 단식을 하며(요나3,5) 회개를 하였지요. 그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에게까지 자루을 입히고 재를 뒤집어쓰며 하느님의 말씀을 새겨들었습니다. 이렇게 요나의 설교만으로도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도 훨씬 낫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두 번째 예로 드신 솔로몬을 찾아온 남쪽 나라 여왕의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을 때 그 지혜와 명성을 듣고자 멀리 스바에서 찾아온 여왕이 있었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수많은 예물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1열왕10,2)

그런데 솔로몬보다도 훨씬 더 지혜로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또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요나 예언자나 솔로몬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니네베 사람과 스바의 여왕이 훨씬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간 사람이며, 심판 날이 오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를 단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관심은 오직 이 세상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었지요. 세상의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면 천상의 진리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잠자리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서로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 생각이나 이상이 다르거나, 겉으로는 함께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 시대는 요나의 시대나 솔로몬의 시대보다도 모든 가르침이 훨씬 더 월등했습니다. 요나를 파견하신 분이 하느님이신데 하느님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 시대였지요. 또 스바의 여왕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온 그 시대에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분, 하느님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왔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이 하느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놓치게 만드는지를 오늘 복음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보다도 더 어리석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환경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좋습니다. 좋은 성전에,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성경들이 있고, 수많은 시청각 교재들과 신앙 교육의 여러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알아가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정도가 예수님 시대보다도, 요나 시대보다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200여 년 전에 이 땅에 신앙의 씨앗을 심었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보다도 우리의 믿음은 훨씬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현세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오신다면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 못지않게 호된 꾸지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느님께 다가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오늘, 우리는 새벽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에 담으며 삶의 터전에서 실천하려고 결심합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것처럼 그렇게 산다면 우리 또한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 때 완성되는 것임을 다시 되새기고, 내 삶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오늘 하루, 이번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