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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

위례성모승천성당 0 44 10.17 17:13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

 

      

1독서 : 에페 1,11-14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었고, 여러분도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복 음 : 루카 12,1-7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들이 다 있게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 교육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녀 교육이 이루어지면 관심은 또 자연스럽게 건강과 재산, 사회적 명예 등으로 옮겨가지요. 사람들은 이것들을 이루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잃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인생의 방향을 놓쳐버립니다.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생기게 되지요.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자살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4년 자살 사망률은 인구 십만 명당 24.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고 합니다.(조선일보 10.2) 자살의 원인으로는 모든 힘을 쏟았던 돈과 명예, 건강을 어느 순간 잃은 데서 오는 상실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순간의 판단이 안타까운 결과를 불러온 것이지요.

 

    이것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정작 우리가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부분은 재물이나 명예, 건강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사람은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지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사목자인 저는 자주 죽음을 접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죽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죽음이 판이하게 다른 것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지요. 믿지 않는 사람은 죽지 않겠다고 끝까지 발버둥을 칩니다. 마지막 준비를 돕기 위해 제가 가면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힘을 다해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신부님, 저 좀 더 살게 해 주십시오. 죽고 싶지 않습니다. 더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안타까운 모습으로 세상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비해 믿는 사람의 죽음은 거룩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사목자인 저가 도착하면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겸손한 모습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세상과의 마지막 매듭을 풀 수 있었던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성체를 모시고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며 하느님이 계신 곳을 향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고 평화로운 그 모습이 거룩해 보이기까지 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희망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정직할 것을 가르치시며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다시 한 번 지적하십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12,4-5)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느님입니다. 일찍이 집회서 저자는 지혜를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지혜는 믿는 이들과 함께 모태에서 창조되었다.”(집회1,14)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세어두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인지, 믿지 않은 사람인지는 죽음 앞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을 믿고 영생을 희망한다면 나이가 들수록 준비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 자식조차 믿지 못하고 돈만을 의지하여 움켜쥐고 놓지 않지요.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 가야 할 시간이 가까울수록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최후심판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안타깝게도 신자들 중에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 못지않게 돈과 건강,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요즈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여 그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여의치 않게 되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조차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참된 자유는 하느님 안에서 비롯됩니다. 육신을 죽이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게 되지요.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12,4-5)

 

    우리의 관심은 믿지 않는 자들과는 달라야겠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식과 재물과 건강만을 의지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들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떠난 후에 홀로 죽음을 맞이하려니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하지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변치 않고 나에게 영생을 주실 분은 오직 주님뿐임을 알고 흔들림 없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은 우리의 구원을 좌우하실 하느님뿐이며,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오늘 복음 말씀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