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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복음을 전하는 그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위례성모승천성당 0 31 10.23 10:07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복음을 전하는 그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독서 : 에페 3,2-12 (그리스도의 신비가 지금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 음 : 루카 12,39-48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이번 주간 내내 예수님께서 주시는 가르침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양식을 공급하는 한 관리인의 비유를 들어 언제 오시는지 모르게 오실 주님을 깨어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자세를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주인이 있든 없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종과 주인이 더디 오려니 생각하고 제멋대로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여 세월을 보내는 불충한 종을 비유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충성스럽지 못한 종은 쫓겨나게 되고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해야 됨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고 동시에 늘 깨어있으라고 말씀하고 계시지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을까요?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사명이 있지만 가장 궁극적인 사명은 복음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주신 이 사명은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함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18-20)

하늘로 승천하시며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선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이 사명을 바로 이어받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열두 사도와 후에 개종한 바오로 사도까지 온전히 매진했던 것이 바로 이 선교의 사명입니다. 사도행전이 그 과정을 그대로 전해 주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목숨까지도 바쳐가며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실했던 사도들의 행적을 낱낱이 그리고 있는 사도행전을 통해 성령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선교의 사명은 전 세계 곳곳에서 실천되고 있습니다. 밀림 깊숙한 곳부터 교도소에 있는 사형수에 이르기까지 복음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크고 귀중한 사명을 우리는 예수님께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이 선교의 사명에 나는 충성스러운 종인가? 불충한 종인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충실하지 못한 종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요.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 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루카12,45-46)

불행하게도 우리 주위에는 불충한 종들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본당의 신자 수는 3800명에 가까운데 일 년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고작 170여 명에 불과한 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불충실한 종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이 선교의 사명에 내가 얼마나 충실하였는지를 나 스스로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를 생각하면 선입관이 앞서 부담을 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만큼 큰 이웃 사랑은 없습니다. 요즘 같이 힘들고 외롭고 불안한 시대에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 이상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알게 되면 자유를 얻습니다. 가난으로부터도 자유롭고, 건강이 좋지 않아도 자유로우며, 죽음 앞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복음(福音)을 전하는 것 이상 더 큰 이웃 사랑은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에게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일신상의 안위를 제시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씀이지요. 특히 입시의 첫 관문에서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자녀에게 자유롭고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보다 더 자녀를 위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가끔 성당에 가는 시간이 아깝다며 시험 공부에만 열중하라는 부모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금방 무너지고 말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모습이지요. 정말 자녀를 위하고 이웃과 형제들을 사랑한다면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알게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선교는 이웃 사랑의 첫째 자리를 차지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사명을 별 생각 없이 흘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당에서도 선교 사명에 충실한 그룹은 어른들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입니다. 결과가 증명해 주고 있지요 아이들의 선교는 참으로 단순하고 쉽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머리 속 계산이 없지요. ‘축구하러 가자.’ 혹은 탁구 치러 가자.’하고 성당으로 친구를 데려오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느님을 알게 되고 신앙의 뿌리가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신자들에게 선교 사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미사가 끝날 때마다 사제는 신자의 사명을 확인시켜 줍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끊임없이 이야기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인지 사람들은 교회 밖에만 나가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합니다. 선교 사명에 충실하는 것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충실한 종의 모습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또 교회가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선교의 사명이 신자인 우리의 첫 번째 사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