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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결단

위례성모승천성당 0 31 10.24 10:39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결단

    

 

1독서 : 에페 3,14-21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복 음 : 루카 12,49-53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

우리에게는 세상에 불은 지르러 오셨다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무척 의외로 느껴지고 낯설기조차 합니다. 진리 자체이신 당신께서 오신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루카12,53)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예견하십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가족 간의 유대를 바라고 평화를 원하며, 갈라져서 다투기보다는 화합하여 잘 살기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고 계시지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이며 이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며 평화를 원하고 화합을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그와는 많이 다르지요. 참된 평화를 위해서는 분열을 각오해야 하고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다툼은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뇌물을 받고 문제를 일으킨 공무원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세계 40위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살아가는 정도에 비해서 부패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가 있지요. 삶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관행처럼 굳어진 우리 사회의 부패고리를 안타깝게 이야기합니다. 교묘히 뇌물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으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인허가를 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몇몇 생각 있는 사람들이 이런 안타까운 모습들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들추어내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는 왜 자꾸 문제거리를 들추어내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느냐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며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부패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우리 모두는 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선은 시끄럽고 불편해도 부패와 부정의 고리는 들춰내어 끊어야 합니다. 끊어내지 않으면 불의는 나중에 더 큰 비극을 불러오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오늘 하느님의 뜻과는 정반대인 이런 부정과 불의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갈라지고 딸과 어머니가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때에야 참 평화가 찾아온다는 말씀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여기에 가장의 직업이 공무원인 가정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받는 월급은 뻔한데 남편이 지나치게 돈을 흥청망청 쓰고 분에 넘치게 먹고 마시는 모습이 부인의 눈에도 이상했지요. 뭔가가 있는 것은 같은데 집에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니 모른 척 그냥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공무원이 뇌물수수죄로 걸렸고 그것으로 인해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그 가장은 조바심이 생겨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발뻗고 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도록 부인이 모른 척하고 있으면 그 집안은 불안과 공포, 불화와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입니다. 큰 소리를 내며 싸우더라도 가장이 성실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야 하지요. 평탄하게 여겨지던 일상이 깨어지더라도 바른 길을 고집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불을 지르러 왔다는 말씀이고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평화로운 집에 어느 날 갑자기 분란을 일으키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행해지지 않는 곳에 하느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부정과 비리를 들춰내고, 비록 분열이 일어나고 시끄러워져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잠깐의 불화를 겪더라도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를 꿈꾸고 화합을 원하며 진리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불의와 부정이 가득한 사회 구조에서는 결코 이룰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이 이 사회 구조를 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얻기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서 하느님 안에 있지 않고 시끄러운 세상에 가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서 조금 더 빨리 진급하기 위해서 윗사람에게 뇌물을 바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평화가 존재하겠습니까? 아마도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릴 것입니다. 누군가 뇌물 수수로 적발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이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남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우리 언행도 고쳐져야 합니다. 생각없이 한 말 한마디로 남의 가슴에 상처를 내놓고 본인은 평화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지요.

평화를 원한다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며 바르게 행동하면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평화는 다가올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기도하면서 평화를 줄 수 없는 것들, 돈이나 건강이나 세상의 명예 따위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결코 평화는 오지 않지요. 요즘 들어 부쩍 웰빙을 얘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외모를 가꾸면서 오히려 끊임없이 건강을 걱정하는 건강 염려증에 시달리는 것을 봅니다. 변하는 것에서 어떻게 평화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주름살이 생기고 신체는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옛날 수도자들이 자주 사용했던 비유 중에 마음의 문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선하고 정의로우며 남을 위한 생각이라면 스스로 받아들이고, 반대로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비판적이고 세속적인 것이라면 마음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 스스로가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만 스스로가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참 평화를 원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지, 주변 환경은 어떠한지 등을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바르게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참 평화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세속적이고 탐욕적이며 오로지 세상과 육신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몰려다니면서 평화를 얻을 수는 없지요.

 

   우리 시대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평화를 줄 수 없는 곳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재물이나 육신, 세상의 성공은 우리에게 결코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지요. 오히려 끊임없는 불안과 갈증만을 줄 뿐 입니다. 우리 자신을 지켜주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평화는 변하지 않는 것들 안에서, 또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은총의 열매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안에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바르게 말하면서 바른 곳에 관심을 가질 때 참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돌고 돈다는 돈과, 나이가 들면 늙는 신체와, 때가 되면 품을 떠나는 자식에 의지한 채 변하는 것에서 평화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혜로운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