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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예수님의 어느 안식일

위례성모승천성당 0 45 10.28 15:31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예수님의 어느 안식일

 

      

1독서 : 에페 4,325,8 (여러분도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복 음 : 루카 13,10-17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안식일일지라도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 손을 얹어 고쳐 주시지요. 우리는 이 여인이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아왔을지 쉽게 추측해볼 수가 있습니다. 이 불쌍한 여인은 여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부자유스런 몸으로 평생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인간다운 미래는 꿈도 꾸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13,12)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병을 단번에 고쳐 주셨습니다. 큰 은총을 입은 여인은 너무나도 놀랍고 기뻐서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모여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요. 예수님께서 여인의 병을 고쳐 주신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기뻐하며 하느님과 예수님을 찬양한 반면에 회당장을 비롯한 몇 몇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하지요.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13,14)

맞는 말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그들의 지적은 옳지요.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반대하고 나선 이 사람들은 실은 자신들의 편리에 따라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다른 일을 해오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율법을 해석하여 처신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율법 완수를 고집하며 비난과 반대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모순된 모습을 알고 있던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들의 비난에 단호한 대답을 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13,15-16)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동의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으며 군중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온갖 훌륭한 일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놀라운 하느님의 기적과 은총의 사건을 똑같이 보고 겪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고 기뻐하며 그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회당장과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하고 반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기고 좋아하는 일을 왜 몇 몇 사람들은 반대하고 비난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일은 예수님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일을 꼬인 마음으로 비난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모습이지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입장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보여지는 모습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더라도 그 여인의 입장에 섰다면 어떻게 고쳐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안다는 회당장과 몇 몇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이웃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면 그토록 일생을 힘들게 살아온 여인에게 자유와 희망을 준 예수님의 처사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회당장은 우리가 잘 아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방탕한 생활에서 돌아온 동생을 끝내 용서할 수 없다고 버티었던 첫째 아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용서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들로서의 품위까지도 되돌려 주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마음과 온갖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여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오늘 예수님의 행위를 결코 반대하거나 비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안타까운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부딪히는 대부분의 원인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서 생겨난 일들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하고 강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혀서 상처가 나는 것이지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또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이 세례를 받은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얼마나 남의 입장을 배려할 수 있으며 얼마나 하느님의 뜻을 가슴에 담고 사느냐가 어른이 되는 것이고, 신앙이 깊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이란 나의 입장을 접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상처와 갈등이 야기되는 일들이 벌어진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어려움은 오히려 화해와 성숙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훌륭한 일을 보고 기뻐한 오늘 복음에 등장한 군중의 열린 마음이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