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성모승천성당
홈 > 신부님강론 > 매일미사강론
매일미사강론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구원에 이르는 문

위례성모승천성당 0 34 10.30 11:28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구원에 이르는 문

      


복 음 : 루카 13,22-30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 좀 의아한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아주 자비로우신 분이시지요. 어떠한 사람이라도 원한다면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시는 분, 뿐만 아니라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서라도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시는 착한 목자로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구원받을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13,23)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구원될 사람이 많을지 적을지에 대해서 직접적인 답변은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13,24)

모두가 다 구원된다고 말씀하시면 좋겠는데 그런 말씀은 없으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시지요. 뿐만 아니라 아무리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리고 졸라도 모른 척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13,30)

오늘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마무리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심판 날의 단호함을 미리 말씀하고 계시는 것인지, 또 오늘 구원에 대해서 질문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가르침을 주시는지를 우리는 생각해보고 그 배경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율법 학자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민족 중에서 자기 민족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아는 사람들은 자기 민족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동족 중에서도 사마리아 사람같이 종교적으로, 또 혈통 면으로도 혼혈인 민족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하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수가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얼마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13,24)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을 일삼는 자들은 모두 쫓겨나게 되고 사방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을 첫째라고 생각하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뽑혔다는 그들의 타성에 젖은 선민의식을 흔들어 깨우십니다. 악을 일삼는 다면 첫째도 꼴찌가 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지요. 또 하느님을 몰랐던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모여들면 그들이 바로 첫째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이름만으로, 또 가난하다는 조건만으로, 부자라는 조건만으로, 영세를 받았다는 조건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 사목위원이나 단체장을 맡는 등 신앙 생활을 오래하고, 이것저것 활동을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죽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서로 싸움을 해서 코피가 터지고 상처를 입어도 열흘이면 아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말로 인한 상처는 평생을 갑니다. 쉽게 한 말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혀서 깊은 상처를 내고 심하면 그의 영혼을 죽이기도 합니다. 험담이나 좋지 못한 말들, 또 쉽게 흘려버리는 말들이 사람을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반대로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모두가 외면하는 상태에서 감싸주고 일으켜 주는 이웃의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경우가 있지요.

 

    격려하고 칭찬하는 좋은 말들을 하는 것이 말씀을 실천하는 좋은 예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험담을 하거나 남을 비방하는 말들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웃의 좋은 면을 찾아주고 일으켜 주고 감싸주고 희망을 주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남에 대한 험담은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라고 끊임없이 서간에서 강조하셨습니다.

수십 년 신앙 생활을 하고 단체장을 했지만 틈만 나면 불평을 하고 입으로 사람을 잡는다면 구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세례 받은 지 얼마 안됐어도 정말 따뜻한 말과 챙겨주고 기다려주고 격려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구원 받을 것입니다. 첫째지만 꼴찌가 되고 꼴찌지만 첫째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 바로 이러한 말씀이지요.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는 말들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고, 구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본당 신자들은 사람을 살리고 이웃에게 기회를 주는 따뜻한 말들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적인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선한 것을 찾아내며 절망의 끝인 죽음에서도 희망을 일으키는 것,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고 찾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을 실천하는 행동이지요. 희망을 주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말이 구원에 가까운 길임을 기억하고 이를 더욱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