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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나에게는 하느님이 전부입니다

위례성모승천성당 0 40 10.14 09:51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나에게는 하느님이 전부입니다 


         


     "아무 것에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아무 것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니

      인내는 모든 것을 얻게 합니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이에게는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오로지 하느님으로 충분합니다."(데레사 성녀의 말씀 중에서)

 


    오늘은 교회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분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녀 데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으로 깊은 영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입니다

    "데레사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를 학대하거나 또는 그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는 일이 가장 빠른 일이다."

아빌라의 주교의 말에 비추어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을 위한 고통을 진심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성녀가 오늘 축일로 지내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입니다. 동명의 '소화 데레사'성녀와 구분하기 위해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대 데레사'라고도 부르지요. 성녀는 그 이름에 못지않게 대 성녀이며 가르멜 수도원의 개혁가이고, 신비가이며 여성 최초의 교회학자이기도 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 아빌라시에서 9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양친은 신심이 두터운 귀족으로 자녀들을 가톨릭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시켰고, 특히 그의 아버지는 독서를 즐기는 분으로 자녀들에게도 유익한 독서를 시키기 위해 좋은 서적들을 마련해 주었는데 데레사는 성인들의 행적을 읽으며 순교자들의 장렬한 죽음에 매우 감명되어 어린 마음에도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치겠다는 마음을 깊이 새기며 자라게 됩니다. 12세 때 어머니를 여읜 데레사는 성모상 앞에 꿇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성모님께 자신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성녀는 19세 때 아빌라의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련수녀가 되어 환자를 간호하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그 환자의 병은 아무도 근처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종류였지만 데레사는 잘 참고 감정을 억제하며 까탈스러운 환자를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 결과 환자를 통하여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위로를 맛보게 되어 매일매일 기쁨으로 생활하였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수녀원을 떠나게 됩니다.

그 후 겨우 건강이 회복되어 수녀원에 복귀하였으나 허약한 몸으로 인한 고통은 평생 지니고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성녀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였으며,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고민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완덕에 나아갈 열렬한 마음을 품고 수녀원에 들어왔지만 수녀들의 수도 정신이 이완되었음인지 속화된 수녀원 분위기에 실망과 불만을 안고 살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중 1555~1556년 사이에 신비스러운 환시와 음성을 듣게 됩니다.  


    어떤 날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다가 성녀는 매질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상본을 쳐다보고 저도 모르게 감동되어 냉담한 자신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게 되었는가 하면, 아우구스티노의 <참회록>에 비추어 자신의 영혼에 부끄러움을 발견하여 배전의 노력을 결심합니다. 그러자 시간이 갈수록 여러 가지 영적 환상들이 점차 빈번해지고 뚜렷해지면서 불가사의한 신비적 체험을 하게 되지요. 때로는 정신착란이 아닌가 하는 번민 속에 빠져 지내던 성녀는 알칸타라의 베드로 신부와 보르하의 프란치스코 신부를 만나 영혼의 평온을 되찾게 됩니다. 그때부터 영성적으로 새로 태어난 성녀는 고백신부의 명령에 의해 그때의 일들을 기록합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생활은 내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는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

    자기 안의 예수 생활, 이것이 유명한 데레사 성녀의 신비생활입니다. 신비생활의 근본은 '하느님 없는 나는 무(無)요, 나에게 하느님은 전부'라는 사상이며, '모든 것에 있어 주님의 뜻을 이행함'이 성녀의 표어가 되었습니다. 성녀의 생각으로 성인이 되는 길은 자신의 감정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자신을 죽여 완전한 주님의 정신으로 소생케 하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데레사는 영혼을 신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밖으로는 가르멜회의 개혁을 도모하였습니다.  


  1562년 데레사는 가르멜의 초기 규칙대로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고자 뜻을 같이하는 4명의 수녀들과 함께 '맨발의 가르멜회'를 시작하면서 아빌라에 '성 요셉 수녀원'을 창립합니다. 또한 1568년 누루엘로에 남자들을 위한 개혁 가르멜 수도원(이것이 최초의 개혁 가르멜 수도원)을 세우게 되는데 이때 십자가의 성 요한 성인을 만나게 되지요. 그때부터 끊임없는 고행의 순례를 통해 수녀원을 개혁하고 카스티야 지방과 안달루시아 지역의 개혁 가르멜 수도원 17개를 세워 초기 가르멜의 교칙인 엄격한 청빈, 고행, 기도의 삶을 전파합니다.

    그러나 개혁에 반감을 가진 완화 가르멜회(신발의 가르멜회)는 그녀의 수도원 건립을 막기 위해 톨레도로 그녀를 추방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예수님을 향한 열정은 완화 가르멜회의 반대를 이겨냅니다. 성녀의 영적 지도자인 도밍고 바네스 신부와 루이스 데 레온 신부, 개혁 가르멜의 수사 신부인 십자가의 요한, 특히 가톨릭 종교 개혁에 힘쓴 예수회의 신부들은 적극적으로 성녀를 도와줍니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맨발의 가르멜회'를 완화 가르멜회로부터 분리시켜 독립 수도회로 인정하게 됩니다. 데레사 성녀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자서전(1565)』, 『완덕의 길(1573)』, 『영혼의 성(1577)』 등이 특히 유명합니다.

   1580년부터 데레사는 또 다시 개혁사업을 계속하지만 1582년 10월 4일 66세의 나이로 "주님, 저는 성교회의 딸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하느님의 곁으로 떠납니다. 1582년에 일력 개정으로 축일이 15일로 변경되었지요. 데레사는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의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교회학사로 선언되었습니다.  


   오늘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기념일을 지내면서 어떠한 어려움도 하느님을 위해서는 기쁘게 극복해 낼 때 큰 은총을 체험하게 됨을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축복의 길만이 아닙니다.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의 말씀을 실천하며 예수님을 따랐던 성녀의 삶이 우리가 가야할 신자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