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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된 하느님…

위례성모승천성당 0 32 10.16 10:09

<10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된 하느님의 밀알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18,1)하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마태18,3-4)라고 말씀하셨지요. 여러분은 그때의 어린이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옛 전설에 따르면 이때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 가운데 서게 된 행복한 어린이가 바로 이냐시오 성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성인은 24년경에 시리아에서 태어났는데 그때의 나이가 6~7세 가량이었습니다. 어린 이냐시오는 그 순간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일생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지요. , 예수님께서 뽑으셨던 열두 제자 중의 한 분이 사도 요한이었고, 사도 요한은 이냐시오를 자신의 제자로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냐시오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의 2대 혹은 3대 주교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다음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맹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냐시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된 것은 69년으로 그의 나이 45세 때의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에 의해 주교로 임명된 후에 사방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의 박해가 시작되었지만 이냐시오 주교는 한참 동안 체포되지 않았었고, 38년 동안이나 안티오키아의 교회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안티오키아는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으면서 이방인의 선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교회였고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교회입니다. 특히 성 바르나바 사도가 방문한 적이 있었고 성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 전도여행의 중심지로 삼았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결국 안티오키아 교회도 로마의 박해를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10783세에 이른 이냐시오 성인도 감금을 당하고 법관 앞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냐시오 주교는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의 사형은 안티오키아에서가 아니고 로마에서 집행하기로 결정됩니다. 그는 10명의 군사들에 의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중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이냐시오는 기회가 되는대로 심경을 정리하여 여러 교회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보낸 편지들이 초대 교회의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는데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기를 위해 감형운동은 하지 말 것을 진심으로 당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Cap. 4,1-2; 6,1-8,3: Funk 1,217-223)

 

  이냐시오 성인은 거듭 자신의 순교를 방해하지 말도록 당부합니다. 또한 그는 "이 세상과 현세의 국가는 나에게 전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을 더 원하고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으면서 여러분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죽음이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순교지로 향하면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끊임없이 신자들을 격려하고 교회를 염려했던 이냐시오는 모두 7통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이 중 여섯 개는 교회 공동체(에페소, 막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스미르나, 필라델피아)에 보낸 것으로, 그곳의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충실하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도록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그는 이단적인 교리에 대해 경고를 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확고한 진리를 그들에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나머지 한 개는 스미르나의 주교인 폴리카르포의 주교 개인에게 보낸 것으로 선배 주교로서 후배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덕을 가르쳐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이냐시오는 트라야누스 황제 집권 10년째인 107년에 맹수형으로 순교합니다. 후에 신자들이 그의 유해를 안티오키아로 옮겨 안장했지요. 특히 이냐시오는 최초로 그리스도 공동체를 일컬어 '가톨릭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공동체로서 그 안에 반드시 주교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중심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는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 바치기를 간절히 염원했고 결국 맹수의 밥이 되어 하늘 나라의 월계관을 차지하신 분이십니다. 이냐시오를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게 했던 하느님을 여러분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