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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위령의 날> 그들을 빛과 평화의 나라로

위례성모승천성당 0 25 11.01 17:00

<112일 위령의 날>

   그들을 빛과 평화의 나라로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기억하고,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날이지요. 특별히 오늘, 위령의 날에 교회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세대의 미사를 봉헌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저는 위령 성월과 위령의 날을 맞으면서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들을 선호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우리의 유교 사회에서는 아들을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을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하여 쫓아내기까지도 하였던 역사가 우리에게 있지요. 유교 사회에서는 왜 그토록 아들에 집착을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을 얻으려고 애를 썼을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유교를 종교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습니다. 영생관이 없는 것입니다. 죽은 후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나의 생명이 지속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오로지 자식, 특히 아들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후손들이 조상의 위패와 제사를 모시는 것, 이것이 바로 영생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아들이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그 자리에 후손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자리에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과거와 미래가 지금 한 자리에서 어우러져 나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연결장이 바로 제사였던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자식과 제사로 자기의 영생이 지속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그 자체는 자기의 생명이 단절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아들을 낳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를 꼭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영생관과 함께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은 후의 영원한 생명을 믿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감을 믿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그래서 후손이 없어도 자신의 생명이 영원한 세상에 나아가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바치면 하느님께서 영원한 세상에서 더 크게 갚아주시리라고 희망하면서 살아가지요. 그래서 유교에서의 영생관이나 우리 천주교의 근본적인 지향은 같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영생관과 내세관이 있는 천주교 신자라고 해서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산 사람만이 영생을 산다고 믿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하느님의 뜻을 살려고 노력하고 그 뜻에 부합한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세상을 마치고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 심판을 받을 때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산 사람은 영원한 세상인 천국에 들겠지만 하느님의 뜻과 거리가 멀게 산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영멸(永滅) , 영원히 멸망하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속할 것이 남은 사람들은 연옥에서 보속의 시간을 보내고 하느님을 만나 뵙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힘으로는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빠져나올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기도가 쌓여서 연옥에서의 보속이 끝나야 비로소 천국으로 들 수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그 대표적인 기도로 매 식사 때마다 바치는 식후기도를 들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뿐만 아니라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특히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하고 기도하지요. 이렇게 천주교 전례에서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가 빠짐없이 이어집니다. 연옥 영혼이 천국에 들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잊지 않고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령성월을 맞아 신자 여러분께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내가 지금 죽게 된다면 나는 천국에 갈 것 같습니까? 지옥에 갈 것 같습니까? 아니면 연옥에 갈 것 같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이 연옥에 갈 것 같다고 겸손하게 표현하실 것입니다. ,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하나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죽으면 연옥에 갈 것 같다고 표현하시는데 그렇다면 연옥에 있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있으십니까? 연옥에서 몹시 힘겨운 보속의 기간을 겪고 있는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줄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나의 젊음과 모든 정성을 다 바쳐서 키운 자식들이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서 기일에 기도를 하고 미사를 봉헌해 주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또 평생을 함께 한 남편이나 아내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는지를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기도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은 참으로 행복한 분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자신 없어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왜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너무나도 세속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으며 내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마치 이 세상의 삶이 다인 것처럼 생각한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 살아갈 사람처럼 산 결과인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이었는지는 불을 보듯 명약관화합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무궁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지금 지구상에는 50~70억 인구가 어우러져 살고 있지만 이들 모두는 100년이 지나지 않아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또한 반드시 죽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이 세상이 다인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득 차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관심은 여전히 건강이나 재물뿐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참한 상황입니다. 노년을 위해서는 보험을 들고 저축을 하면서도 내가 죽은 후 연옥에서 고생하는 나를 위해 기도 한마디 해줄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오래 남은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이 위령 성월은 우리에게 그 순간이 곧 닥친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라고 우리를 자극합니다. 이 세상이 다인 것처럼 살아온 그 정신을 새롭게 고치라고 강조해 줍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다 죽어갔듯이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갖고 욕심을 내는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연옥에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을 때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나부터가 기도해야 합니다. 나 보다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줄 모르는 자녀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 중의 의무입니다.

오늘은 돌아가신 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는 날입니다. 예전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지금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기일이 되면 마치 제사를 지내듯이 자녀들을 모두 불러놓고 함께 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돌아가신 분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천국에 들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이어져 내려갔지요.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은 빨리 깨닫고 채워나가야 합니다. 노후를 위한 보험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대책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많은 선조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