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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너희는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어라

위례성모승천성당 0 19 11.08 11:59

                             <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너희는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어라 



1독서 : 에제 47,1-2.8-9.12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복       음 : 요한 2,13-22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며 이상한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는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인 성녀의 축일은 지내도 성당 축일이라든지 건물 축일은 잘 지내지 않지요. 도대체 이 라테라노 성당이라는 곳이 어느 정도의 규모이며 어떤 의미가 담긴 건물이길래 해마다 이렇게 축일을 지내는지 의아해지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두려움 없이 큰 목소리로 전하기 시작했고, 그리스도교는 차차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로마에까지 들어가게 된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호된 박해를 받습니다. 로마에는 황제 숭배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대적인 박해가 계속 이어졌는데 그 박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로마의 혹독한 박해를 이겨내고 희망을 주기 위하여 요한 묵시록이 쓰여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박해는 313년까지 약 250년 이상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선언되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당시 교황님께 왕궁을 선물하였고, 그때 처음으로 지어진 성당이 바로 이 라테라노 대성당인 것이지요. 라테라노에 교황좌가 있는 아주 큰 성당이 세워진 것입니다.


   교황님은 대부분이 라테라노 대성전에 머무르셨고 나중에는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기셨는데 베드로좌가 있었던 성전이 바로 이 라테라노 대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전 세계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324년에 지어졌고 119일에 축성식을 하였기 때문에 오늘을 축일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라테라노 대성전 축일인 오늘, 1독서와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의 내용은 모두 성전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성전의 의미가 단지 건물의 의미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요. 성경은 우리의 몸 자체가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탁자를 둘러엎으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2,16)

예수님께서는 왜 이토록 화가 나신 것일까요? 탁자를 둘러엎고 채찍을 들어 후려치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예수님을 화나게 한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또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의문이 생깁니다. 성당을 지으면서 우리는 장사를 얼마나 많이 했었는지요? 장사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의 시대 배경을 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사건이 벌어진 곳은 과월절이 가까워진 때의 예루살렘 성전 마당입니다. 과월절이 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다인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과월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유다인 성인 남자의 의무 중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에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유다인 중 19세 이상 되는 사람은 일 년에 한 번씩은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반 세켈 정도의 액수인데 이것은 성인이 2~3일간 일해서 받는 임금에 해당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이 성전세를 낼 때는 절대 다른 나라 돈으로 낼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 돈에는 그 나라 황제의 흉상이나 섬기는 우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으므로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세를 낼 때는 반드시 이스라엘 화폐인 세켈로 바꾸어서 봉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둘러엎으신 것이 이 환전상들의 가게였지요. 환전상들은 상권을 독점하고 부정과 착취를 밥먹듯이 하고 있었습니다. 환율에 따라서 환금 수수료를 적당히 받아야 하는데 엄청난 폭리를 취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세금을 놓고 그렇게 부정을 저질렀던 것이지요.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환전상들의 탁자를 둘러엎으시며 그토록 화를 내신 것입니다.


   또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 등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는 봉헌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간편하게 헌금을 하고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이렇게 현물로 봉헌을 하였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소나 양, 비둘기를 잡아 바쳤고 그 예물은 전혀 흠이 없고 티가 없는 깨끗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받기 전에 검사를 하는 검사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또 몹시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 짐승들을 파는 상점들이 운영이 되었는데 이 운영권을 대사제들이 쥐고 있었습니다. 물건의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자기네 가게의 짐승들만 합격을 시키는 부정과 비리가 공공연히 자행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뒤집어엎으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신 것이지 가난한 사람들 위해서 성당 앞마당에서 장사하고 있는 것을 나무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폭리와 비리에 물든 장사를 금하시고 부정한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9)

예수님의 말씀에 유다인들이 마구 대듭니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요한2,20)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말씀은 당신의 몸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의 의미가 건물에서 사람의 몸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건물 자체는 그냥 건물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건물 자체를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곳으로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코린토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람 자체가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머무시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3,16-17)

   그 뿐만 아니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교회를 건물이 아닌 신자 공동체의 모임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옛날에 우리는 '성당'하면 건물만을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모임, 믿는 이들의 모임 자체가 교회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성전에 대한 개념도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또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사는 자체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면서 주님과 일치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내가 바로 주님의 성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성전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답이 오늘 제 1독서 에제키엘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 물은 흘러나오면서 점점 그 양이 많아지는데, 그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이 움터나고 숲이 번창하며 온갖 생명들이 번성해 갑니다. 심지어 이 물은 사해의 죽은 물 마저 단물로 변화시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성당에서 예수님의 몸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이제는 내가 바로 생명의 물, 생명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집에서 생명이 움터 나오고, 내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풍요로운 결실이 맺어지며, 내가 나가는 회사가 어둠과 오류의 집단이 아니라 빛과 정의의 집단으로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생명수인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성전인 우리 신자들이 살아야할 삶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