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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온 인류의 구속을 위해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신 그리스도처럼…

위례성모승천성당 0 11 11.09 10:16

<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온 인류의 구속을 위해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신 그리스도처럼…

 

   오늘은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입니다. 이천 년이 넘는 교회 역사 안에서 교황으로서 막뉴스(magnus, )란 존칭을 받는 교황은 레오 1세 교황과 그레고리오 1세 교황(540~604)뿐입니다. 대 교황이란 호칭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교회와 조국을 위해 세운 그의 공로가 참으로 컸기 때문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로마 대제국의 붕괴가 시작된 5세기의 격동기에 신자들의 참된 아버지이며 목자로서 신앙의 완전성을 보존하고 교회의 일치를 수호하며, 침범한 야만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여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레오 교황은 자신을 송두리째 바쳤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대 레오'라는 공경의 호칭을 기꺼이 바쳐 부름으로써 그의 뜻을 높이 기렸지요.

 

   4세기 말경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명문 가문에서 출생한 대 레오 교황은 많은 재주를 보이며 어려서부터 다양한 학문을 습득하였으며, 특히 웅변에 있어서 탁월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타고난 재주를 하느님만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던 그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외면하고 사제가 되었는데 440년 경 교황 식스토 3세가 서거하자 로마의 성직자들과 민중은 일치하여 그를 주교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929일 그는 주교로 서품되어 교황직에 오르게 됩니다. 그가 교황으로 재직하던 시대는 역사적으로 아주 어려운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서로마 제국은 여러 민족들의 계속된 침입으로 붕괴 상태에 놓여 있었고, 교회는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 속에서 에우티케스, 네스토리우스 등의 여러 이단사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로마 교회의 목자로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의 지도자로서 신학적, 사목적, 정치적 여러 난제들을 훌륭히 해결해 냈고 특히 교황권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레오 교황은 사목활동에 주력하면서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강론하였으며, 교회 공동체에 전례 거행을 생동감 있게 도입함으로써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신앙생활을 생활화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또 여러 가지 이단들, 특히 마니교를 거슬러 교회의 정통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신자들에게 이단의 위험성을 알려주었고, 신자들이 세례 받은 후에도 이전의 미신 행위에 빠져 드는 것을 경고하면서 신앙과 윤리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례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448년 레오 교황은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대수도원장인 에우티케스 일파와 격돌하게 되는데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천주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 플라비아노가 내정한 원장이었습니다. 황제 테우도시우스 2세의 지원을 받던 에우티케스는 더욱 큰 혼란을 야기하였고, 레오 교황은 이런 혼란한 상황을 451년 칼체돈 공의회를 열어 수습하고자 노력합니다. 레오 교황 자신은 이 공의회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토무스 앗 플라비아눔>이라는 서간을 통해 그의 뜻을 강력히 전달하였습니다.

서간이 낭독되자 사람들은 감동되어 "이것이야말로 사도 전래의 신앙이며, 성 베드로가 레오를 통하여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탄성을 질렀다고 합니다. 결국 에우티케스의 단성설을 단죄하고 에페소 회의를 주도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쿠루스 총대주교를 파면합니다. 레오 교황은 이처럼 이단을 처리하여 천주강생의 교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도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사목자로서의 놀라운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레오 교황은 또한 정치적으로도 외교 문제에 개입하도록 요청을 받았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로마 대제국의 붕괴가 시작되자 로마 시민은 그들을 지켜줄 주인을 잃게 됩니다. 서고트족이 로마를 공격했고, 이어 훈족이 로마로 침입했지요. 로마 황제는 그들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로마 시민들은 교황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451년 훈족의 아틸라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쳐들어와 로마를 위협하자 발렌티누스 3세 황제는 레오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합니다. 레오 교황은 용감히 나아가 화평을 얻어내고 아틸라 왕은 진지를 거두고 돌아갑니다. 455년에는 반달족의 젠세리코가 이탈리아 반도에 상륙하여 로마로 진격해오자 사람들은 다시 레오 교황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중재로 로마 시를 방화와 살육에서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지혜롭고도 용감한 활동의 결과 교황직의 위신은 대단히 높아졌고,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이라는 위기마저도 이겨낼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교황직은 교회의 영역을 초월하는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교회에 그들의 모든 것을 기대게 되었습니다.

 

   성 베드로 이후 가장 위대한 교황으로 존경을 받는 성 레오 교황은 재직 21년간 지혜와 성령의 도움으로 성교회를 훌륭히 사목하고 4611110일 세상을 떠납니다. 그 후 1754년 레오 교황은 교황 베네딕도 14세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대 레오 교황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하느님의 일을 위해 봉헌하고 사셨던 분입니다. 빈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서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가지고 사용했던 것들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대 레오 교황처럼 하느님께 받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일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