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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제2의 성모 마리아이신 모니카 성녀

위례성모승천성당 0 42 08.26 09:31

<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제2의 성모 마리아이신 모니카 성녀


   오늘은 모니카 성녀 축일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과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이시지요. 그런데 이 두 분을 보면 나쁜 일이 꼭 나쁜 것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망나니 아들이 있었기에 그 어머니 모니카가 그렇게 위대한 성녀가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자리에도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또 자녀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이 계시리라고 짐작됩니다. 오늘 모니카 성녀의 삶을 되짚어 보면 그 문제의 해결책이 보일 것입니다.


   잘 아는 대로 그 유명한 <고백록>의 저자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하느님을 알기 전까지 무척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는 많이 했지만 오랫동안 방탕했던 아들을 회개 시키고 또 성인으로까지 만든 아주 놀라운 모성애를 끝까지 발휘했던 어머니가 바로 모니카 성녀이시지요.

   모니카 성녀는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모니카 성녀보다 나이가 배 이상이나 많았던 남편은 부유했으나 난폭하였으며 과격한 성격의 한량에다가 비신자였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까다로운 성격으로 어린 나이에 돈을 보고 시집을 왔다고 며느리 모니카를 괴롭히기 일쑤였지요. 이렇게 참기 힘든 결혼 생활을 하는 모니카 성녀에게 힘이 된 것은 오로지 기도뿐이었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느님 안에서 극복해 가던 모니카 성녀에게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니카 성녀의 전기에서도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성녀는 남들 앞에서 남편이나 시어머니를 결코 험담하지 않았습니다. 힘든 결혼 생활이었지만 자기를 힘들게 하는 남편이나 시어머니에 대해서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지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기도할 뿐이었는데 인간으로서는 하기 힘든 그 인내의 힘은 바로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모니카 성녀의 이 기도를 통해서 시어머니가 먼저 신앙을 갖게 되고 뒤이어 남편도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성녀는 모두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두 자녀는 효자인 반면에 향락에 빠졌던 장남 아우구스티노는 어머니를 몹시 괴롭혔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즐겨했던 아우구스티노는 마니교에 몰두하는 등 사상적으로도 방황을 많이 하여 어머니 모니카의 애간장을 녹였지요. 공부는 아주 잘하였지만 그런 것이 모니카 성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탐욕과 향락에 빠지고 마니교 신자까지 되어 방황하는 아들로 인해 모니카 성녀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성녀는 아들이 있는 곳을 계속해서 찾아다니며 기도하고 주교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고 어머니의 정성으로 마침내 아우구스티노는 그 유명한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나게 됩니다.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나게 되면서 아우구스티노는 방황했던 생활을 접고 새로운 길을 가게 되지요. 그래서 마침내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되고 학자가 되어 성인의 품에까지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의 끊임없는 기도와 끝까지 항구했던 인내는 시어머니와 방탕했던 남편, 그리고 아들까지도 이렇게 거룩하게 변모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든 상황을 인내하고 가족들을 변모시키는 그 힘은 우리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오늘 모니카 성녀를 통해서 우리는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즈음 우리 어머니들의 관심사는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모니카 성녀의 관심은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것이었고 오로지 아들의 올바른 신앙 생활에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족들이 방탕의 생활을 접고 하느님에게로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습니까? 그와는 반대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젊은 청소년들이 냉담 하는 원인은 그 어머니들에게 더 많아 보입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의 관심은 오로지 공부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있지요. 출세와 공부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으로만 키웠기 때문에 부모들이 일생을 헌신했지만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고 지향 자체가 바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육 탓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한 노후를 맞고 있는지 모릅니다. 부모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요즈음 부모들의 교육 태도를 보면 참으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애를 쓰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녀들을 키우는데 좋은 결과는 보지 못하고 결국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교육의 지향이 올바른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와 명예에만 목표를 두면 좋은 결과는 결코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심어 줄 때 자연히 부모도 공경하게 될 것입니다. 입시 때가 되면 수험생은 모든 것이 다 면제가 되고 모든 일에서 제외되어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하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버립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교육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오히려 온 가족이 함께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여야 하고 그것이 자녀에게는 큰 신앙 교육이 되는 기회인데 그 기회를 놓쳐버리는 셈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은총의 시기로 바꿔 나가는 방법, 즉 함께 기도하고 함께 미사 참례하면서 하느님 안에서 은총을 구하는 방법을 왜 자녀에게 가르칠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길거리를 헤매고, 독서실에서 혼자 두려워하며,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선생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해할 리가 없습니다.


   이웃을 배려하며 바른 지향으로 하느님 안에서 지혜를 구하고 은총을 구하는 방법을 가족과 함께 나누십시오. 그렇게 나의 신앙 역정을 자녀에게 전수해 주고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신앙 교육이지요. 교리를 가르치는 것만이 신앙 교육이 아니고 생활에서 보여주는 부모의 작은 모습 하나 하나가 다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평소에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며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연도를 바치고 연미사를 봉헌하는 등의 신앙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른 지향으로 생활에서 이어지는 교육이 신앙의 유산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엉뚱한 것에 관심을 두고 내 욕심 가는 대로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오늘 성녀 모니카 축일은 우리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고, 왜 그런 잘못된 결과들이 빚어지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해 줍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바른 지향으로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고 인내할 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굳은 마음으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