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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위례성모승천성당 0 61 08.26 09:40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당신 안에 있잖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이
      이 몸을 붙들고 님에게서 멀리했나이다.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사 눈멀음을 쫓으시니,
      향 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 번 맛 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 번 만지시매
      위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고백록 10권 27장)


   오늘은 서양 사상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사상적 업적을 이룬 <고백록>의 저자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성인은 354년, 북 아프리카 타가스테(현제 알제리와 튀니지의 국경)에서 로마 제국의 말단 관리였던 아버지 파트리치우스와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얼마 전까지도 외교인으로 살았으나 어머니는 열심한 그리스도인으로 일생을 보냈으며 아우구스티노는 그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아들의 신앙 생활에 늘 관심을 가지고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370년 경 아우구스티노는 법률가의 꿈을 안고 카르타고 대학에서 수사학을 공부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16세였는데 방탕한 생활로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던 중, 동거녀로부터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또한 그는 점차 철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더니 373년 마니교에 빠지게 됩니다. 그곳에서 진리를 얻으려고 9년이나 시도해보지만 마니교의 지도자 파우스트와 대담 후 실망한 나머지 회의주의에 빠지고 말지요.
   아우구스티노는 383년에 어머니를 속이고 수사학 교사로 로마에 갔으나 학생들의 태도 때문에 크게 실망하게 됩니다. 많은 학생들은 그의 풍문을 듣고 와서 배웠으나 학비를 내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다른 곳에 직장을 구하고자 하였고 로마 시장인 시마코의 알선으로 밀라노로 가서 그곳에서도 역시 교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후에 그 소식을 들은 모니카는 아들을 찾아 카르타고에서 밀라노까지 먼 길을 여행하지요.
   당시의 밀라노의 주교는 너무나 유명한 암브로시오 성인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 주교가 매우 유명한 웅변가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강론을 자주 들으러 갔습니다. 처음 동기는 단지 호기심에 불과했으나 차차 열렬한 진리의 탐구욕으로 변했지요. 한편 모니카는 암브로시오 주교를 찾아가 아들의 방황을 눈물로 하소연하였고 주교는 어머니 모니카의 깊은 신심과 아들에 대한 사랑에 감동하여   "안심하십시오, 눈물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하며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384년 이후 아우구스티노는 신플라토니즘과 성 암브로시오 주교에게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즈음에 그는 명예, 결혼, 재산 등의 문제로 내적인 갈등을 겪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여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치솟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방황하던 중 마침내 386년 로마서 13장을 통해 개종을 결심하고 387년 그의 친구 알리피오와 아들 아데오타투스와 함께 암브로시오 주교에게 부활전야에 세례성사를 받습니다. 그가 놀라운 결심을 한데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지요.


   세상적인 일로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불길처럼 타올라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정원을 산보하다가 아우구스티노는 어린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들어서 읽어보라! 들어서 읽어보라!"
   방에 들어와서 상위에 놓여 있는 성경을 들어 페이지를 들춰보니, 맨 먼저 눈에 뜨인 것이 로마서  13장의 말씀이었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13,13-14)
   아우구스티노에게 모든 의문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확신의 광명이 그를 가득 채워 그의 개종이 마침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세례 후 전에 맛볼 수 없었던 평화와 기쁨이 그의 마음에 깃들이게 되고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보속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 모니카는 로마 부근인 오스티아에 이르렀을 때 열병에 걸려 천국으로의 길을 떠나게 되는데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습니다.
   "얘야, 이 세상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단다. 이 세상에서의 나의 모든 희망이 다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아프리카에 도착하지만 아우구스티노에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아들 아데오타투스마저도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아우구스티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 속에서 모든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남은 일생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부터 그의 생활은 그전과는 전혀 다른 성스러움 자체였다고 합니다. 그의 생활에 감탄한 신자들은 그를 성직자로 추대했으며, 396년 발레리오 주교가 서거하자 아우구스티노는 신자 및 성직자들의 추대를 받아 히포의 주교로 임명됩니다. 그는 중책을 완수하기 위해 34년 간 철저하게 자기와 싸우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지켜나갔습니다.
   429년 로마를 침입했던 반달족이 아프리카에도 침입해 히포시를 포위했을 때 아우구스티노는 병상에 누워 속죄의 시편 7장을 외우고 나서 76세의 나이인 430년 8월 28일 하느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아우구스티노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에 기반합니다. 그는 사제 기간 중 크게 세 가지 이단(도나토 이단, 펠라지오 이단, 마니교 이단)과 싸워 교회를 보호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신학을 형성하였습니다. 또 교회와 성사적 은총에 관계된 교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서양신학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후기에는 펠라지오 논쟁에 종사하여 타락과 원죄, 예정설에 관한 교의를 발전시키는데 특히 예정설은 후에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저서로는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 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 등이 남아있고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는 자신의 개종기를 실은 『고백록』과 최초의 역사철학서인 『신국론』이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박사이며 영성가였고, 서방 그리스도교의 지성의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톨릭 신앙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은 실로 지대하여 중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철학의 전 내용과 서양 신학의 현재 모습을 결정짓게 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독일의 교부학자 알타너(B.Altaner)는 아우구스티노를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습니다. 
   "위대한 주교 아우구스티노는 테르툴리아노의 창조적 정열, 오리제네스의 영적 풍부함, 치프리아노의 교회적 의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한 논리를 플라톤의 높은 이상주의와 사변에 결합시켰다. 그리고 라틴인의 실용적 감각을 그리스인의 영적 유연성에 일치시켰다. 그는 교부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며, 전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다."


   오늘 아우구스티노의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말씀해주신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복된 인간의 회개에 대하여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방탕했던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눈물로써 인내했던 어머니 모니카의 지향대로 아우구스티노는 역사에 길이 남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모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아래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른 지향과 기도, 인내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주님의 풍성한 은총의 힘으로 죄악에서 성덕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놀라울 만한 대전환을 이루고,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오직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온전히 봉헌했던 성인의 삶을 세속에 물든 우리 모두가 되새겨 보는 하루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