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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당신은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위례성모승천성당 0 53 09.13 12:17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당신은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1독서 : 민수 21,4-9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복 음 : 요한 3,13-17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요즈음 젊은 의학도들이 몰리는 과()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쪽이라고 합니다. 내과나 정형외과 같이 힘든 과목보다 몇 배나 인기가 높다는 것이지요. 피부과를 지망한 의사들에게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왜 하필 피부과를 택하셨습니까?"

    "첫째로 피부과 환자는 밤에 찾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귀찮지가 않지요. 둘째로 피부과 환자는 죽는 경우가 드뭅니다. 의료 사고가 있을 수가 없지요. 셋째로 피부과 환자는 완치되는 경우가 희박합니다.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을 수가 있답니다."

이런 이유들로 피부과를 택했노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환경보다는 편하고 좋은 미래를 바라고 꿈꿉니다. 그래서 좀 편해 보이고 나아 보이는 곳을 택해서 인생의 방향을 잡습니다. 그런데 좀 편하고 나아 보인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편해 보인다고 선택하고 결정한 그곳에도 어려움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지요. 이것은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천주교 신자가 되셨습니까?"하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또는 "복을 받기 위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모두가 좋은 것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이것은 단지 우리의 바람일 뿐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꿈꾸는 마음의 평화, 또 복을 받고 천국에 가는 일 따위는 말씀하시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 없는 삶을 희망하며, 고통이 없는 삶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 왔는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8)

예수님께서도 그 길을 가셨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도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하여 지고 가신 거룩한 십자가를 경배하는 날,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십자가가 고통을 상징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잘 아는 사실이지요. 그런 십자가를 드러내 놓고 찬양을 드리는 날입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찾아든 우리에게 교회는 이렇게 십자가를 강조하고 있지요. 십자가를 져야만이 부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어려움이 가로놓이면 피하고만 싶은 것이 약한 우리의 마음이지요.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온 인류를 당신께 모아들이셨고, 또 당신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없는 축복과 평화, 구원을 바라지만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마음의 평화도 하느님의 축복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6,14)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십자가 안에는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부활이 있으며 십자가를 짐으로써 우리는 구원과 자유를 얻게 됩니다.

사람마다 져야하는 십자가의 모습은 다 다릅니다. 가난이 십자가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급하고 모난 성격으로 늘 어려움에 처하는 사람이 있고, 사고를 저지르는 자식이 십자가인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렇게 하소연을 합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십자가가 있습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근시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로 눈앞의 자기 일 밖에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누구에게나 십자가는 있습니다. 가끔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신부님이 참 부럽습니다. 벌어 먹일 처자식이 있습니까? 회사에 나가 골머리를 썩힐 일이 있습니까?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편하고 좋으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을 포함해서 영적인 아버지인 신부에게 딸린 신자(자녀)의 수는 평균 수천 명이 넘습니다. 바람잘 날이 없지요. 부자도 거지도 대통령도 성직자도 수도자도 십자가의 고통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거역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살려달라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그냥 살려 주지 않으시지요.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민수21,8)

높이 달린 불 뱀을 쳐다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만을 살려주십니다. 예수님 역시 광야에서 구리 뱀이 높이 들렸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높이 들리심으로써 이 세상을 구하시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피할 수만 있었다면 어쩌면 예수님께서도 피해 가셨을지 모르지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지신 이 십자가를 어찌 우리가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무겁고 커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처절한 십자가의 길을 다 걸으시고 이제 더는 내려갈 길이 없는 밑바닥에서 온갖 치욕을 다 겪으신 후에 부활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냥 시늉으로만 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치욕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부활의 승리를 이루셨다는 것이지요.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의 끝까지 내려가야 부활은 시작됩니다. 죽음 같은 아픔이지요. 예수님의 부활은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바닥까지 내려감으로써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서 새로운 희망이 솟아나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이고 부활의 신비입니다.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삶의 십자가를 져야만이 우리가 원하는 마음의 평화와 축복, 또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지겠다고, 또 거기에서 구원이 있음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삶의 중심에, 집안의 중심에, 성당에, 각 공동체가 모이는 회합실에,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 몸의 중요한 부분에 십자가를 걸고 달며 그 의미를 되새기지요. 뿌옇게 먼지 앉아 있는 장식품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부딪혀오는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지말고 나를 정화시키고 성숙시키는 은총의 십자가로 받아들이십시오. 부활의 영광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