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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의인이 된 죄인 마태오 복음사가

위례성모승천성당 0 48 09.20 11:09

<9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의인이 된 죄인 마태오 복음사가

  

 

1독서 : 에페 4,1-7.11-13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세워주셨습니다.)

                            

복 음 : 마태 9,9-13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오늘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이면서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 마태오 사도 축일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전혀 다른 흐름으로 변화시킨 책을 찾으라고 한다면 단연 '성경'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신약성경의 첫 번째 권이 마태오 복음서입니다.

예비신자 교리를 가르치면 재미있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매번 이야기를 하고 확인도 하는데 열심히 따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지는 사람이 있고 아예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자기 방식대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서 중에 한 권만 읽고 그 다음으로 건너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용이 비슷비슷해서 하나만 읽었다는 겁니다. 예비신자인 그의 눈에는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각 복음서의 내용은 엄연히 다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라는 저자가 각각 성경을 쓸 때는 연대도 다르고 염두에 둔 독자들도 다 달랐습니다. 읽을 대상이 달랐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지금 제주도를 설명한다고 할 때 이곳에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들도 있고 또 제주도라는 곳을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수시로 다니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들에게 제주도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교통편이나 날씨, 도로 등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최근에 변화된 모습과 지금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주제만 이야기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주도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할 때는 상황이 달라지지요.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설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면 얼마나 소요되고 기후는 어떠하며 도로 사정은 어떻고 그 지역 방언은 어떻다 등 여러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을 하고 내가 의도한 바를 이야기해야 이해가 빨리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저는 제주도를 아는 사람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또 가 본 사람이나 안 가본사람에게나 똑같이 제주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은 그 방법이 달랐을 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에는 일치합니다. 설명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요. 예수님과 같이 이스라엘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굳이 이스라엘의 기후나 풍습, 또 구약에 관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설명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지요. 유다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인 그들이 구약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터키나 그리스 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잘 모르고 하느님도 잘 몰랐으며 이스라엘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설명이 필요했지요. 하느님은 어떤 분이고 이스라엘에는 어떤 관습이 있는지 그리고 율법은 무엇이며 구약성경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설명하는 방법이 달랐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라는 이 메시지만은 같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태오는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지요. 마태오 복음 첫머리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을 말해줍니다. 구약시대 전체를 통해 예언되고 있는 이분이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루카 복음에도 똑같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지 않고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서도 루카 복음서가 유다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님을 알 수가 있지요. 유다교 신자가 아닌 이방인들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으므로 아브라함이 아닌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루카 복음 경우는 병들고 소외 받은 사람들을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을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이 다르고 마르코 복음이 다르며 루카 복음과 요한 복음이 다릅니다. 이들 네 복음서는 내용이 비슷한 것 같아도 독자에 따라 그 방법론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것은 한 목소리로 똑같았지요. 각기 가는 길을 달랐지만 도착지는 같았던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예수님과 동족인 유다인들에게 좀더 하느님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구약과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설명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없는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처럼 세상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써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마태오의 글은 이 세상에 참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태오는 세리였습니다.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고 사람들은 세리인 그와 함께 있는 것조차도 싫어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였지요.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태 9,11)

만나는 것 자체로도 부정을 탄다고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 세리 마태오를 예수님께서 부르셨지요. 마태오가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지탄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은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은 순간 마태오가 이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목숨을 빼앗겨도 돈만은 내놓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으로 옮겨갔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반드시 결단을 요구합니다. 나의 과거를 그대로 짊어지고 전진할 수는 없지요. 이렇게 모든 것을 놔버리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헌신한 사람이 바로 마태오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하느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에페4,11)

오늘 독서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각 사람에게 주신 은총을 나와 가정과 하느님을 위해서 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만을 위해서만 쓴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시인으로서의 영감과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주셨다면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화가로서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면 성화나 조각을 통해서 더 크게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가수들은 대중적인 인기만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 성가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며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고, 운동 선수들은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승리자로서의 결실을 이루며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한 모임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느 한 분이 개신교 신자가 운영하는 기업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주말이 되면 회장이 직원들에 묻는다고 합니다.

    "혹시 신앙이 있습니까?"

없다고 하거나, 있었는데 냉담 중이라고 하면 회장은 주일에 어김없이 운전 기사와 차를 그 직원에게 보내 자기 교회에 나오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을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만 쓰고 만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이 되겠습니까?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헌할 때 그 재능은 더 큰 축복으로 꽃 피우게 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는 자기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돈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같은 민족들에게 버림을 받아도 버리지 않고 움켜쥐고 있었는데 하느님을 알게 된 후에는 그것을 놓고 하느님을 따랐고 자기의 고유한 특징인 글 쓰는 재능으로 하느님을 세상에 증언하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복음을 전해줄 것입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을 지내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나 자녀 교육, 돈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알고 믿고 체험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올바르게 봉헌하는 것이고, 더 큰 축복으로 나와 세상을 화려하게 꽃 피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