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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위례성모승천성당 0 70 10.03 10:32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이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남겨주신 <평화의 기도>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문이지요.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아시시'는 이탈리아의 움브리아주(州) 페루자현(縣)에 있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지방 도시로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움브리아 평야의 평화로운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무척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축일이 되면 아시시의 순례 여행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시시를 둘러보고 그곳에서 좀 더 떨어진 '또디'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박을 할 때는 재미있는 일도 있었지요. 아시시 보다도 더 외지고 아름다운 마을 또디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그 마을 꼬마들이 모두 나와 저를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동양 사람을 처음 본 모양입니다. 산책하는 길 내내 많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쳐다보던 기억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교회가 하느님의 일보다는 세상일에 관심을 두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던 중세 시대 때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했던 성인입니다.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기사가 되기 위해 1202년 아시시와 페루자 사이의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많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됩니다. 이후에도 예전과 같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던 프란치스코는 생사를 오가는 중병을 앓게 됩니다. 이때 병상에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게 된 프란치스코의 삶은 크게 변화됩니다. 이제는 이 세상의 출세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과거의 죄를 통회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아시시로 말을 타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나병 환자들을 만났는데, 본능적으로 나병 환자 곁을 피해가고 싶었지만 그는 곧바로 말에서 내려와 나병 환자를 포옹하고 자선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들을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후 프란치스꼬는 다미아노 성당 앞을 지나다가 성당 안으로 들어가 나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야, 쓰러져 가는 나의 집을 수리하여라."그 말씀은 그리스도 교회를 말하는 것인데 프란치스코는 글자 그대로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해야 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곧바로 그는 그의 말과 장비들을 팔아 성당 수리비용을 마련하여 주임 사제에게 봉헌했으나 그가 거부하였으므로 성당 창문 옆에다 돈을 놓고 떠나갔습니다.
  얼마 후 주임 사제와 성당 수리를 함께 하기로 협의하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란치스코의 아버지는 매우 화가 나서 프란치스코의 행동의 부당성과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시 법원과 교회에 의뢰하는 바람에, 프란치스코는 만인들 앞에서 결정적으로 자신의 정당성과 앞으로의 활동을 천명해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주교와 군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십시오. 지금까지 나는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그에게서 받은 돈과 의복들을 돌려줍니다. 이제 나는 하늘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 한 분만을 섬길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가족들과 이별을 하였고 주교는 그에게 망토를 건네주며 십자가를 걸어 주었습니다.


그 날 이후 생을 마칠 때까지 평생을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탁발승의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성경의 부자 청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묻지요.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10,17)
   예수님께서 율법의 계명들을 말씀하시자 그 사람은 주저 없이 답합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마르10,20)
   그러자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10,21)
   부자 청년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10,22)고 성경은 전하고 있지요. 결국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세상에 남았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일 뿐이었지요.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 많은 유산과 창창한 세상의 미래를 버리고 하느님을 따랐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를 향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다 채워주셨지요. 오늘 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하느님도 모를 정도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에서의 성공만을 따라 살았다면 온 세계에 펼쳐진 수도회의 번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라한 결과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접고 하느님을 따르면 이처럼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부자 청년의 전철을 밟지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 속에서 어떠한 사람보다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셨던 성인 중의 한 분이 프란치스코 성인이시지요.


   사실 가난은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가난은 불행이고 아픔이지만 자발적인 가난, 복음적인 가난은 축복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가 지금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이유는 없어서 각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너무나도 풍요로운데 기인합니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사람은 금방 비만해집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너무나도 물질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에 정신과 영혼은 빈사 상태를 헤매고 육신은 끊임없는 탐욕으로 갈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갈증이 정신과 영혼을 황폐하게 이끌고 이기적으로 만들지요.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듯이 세상의 것을 더욱 차지하고 누리려는 욕심과 지나친 물질적인 풍요가 갈수록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간이나 형제간, 이웃 간에 탐욕이라는 불순물이 끼어 들어 편안하지도 않고 사랑이나 우애는커녕 왕래도 없는 비인간적인 관계로 치달아 가고 있지요.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발적인 가난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모든 것을 움켜잡아 육신에 너무 많은 살이 붙으면 몸과 정신은 무기력해집니다. 바른 육신과 맑은 정신을 지니려면 비만으로부터 탈출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눠야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잘 쓰는 계획을 세우십시오. 형제나 부모,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얼마씩 나누겠다는 계획을 세워서 실천한다면 모든 관계에 서서히 온기가 돌고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회복이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비인간화와 세상 곳곳에 퍼져나고 있는 죽음의 문화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길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은 상생의 문화로 흐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나 소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일 뿐이지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바르게 쓰는 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는 1224년 9월 라 베르나 산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처럼 오상을 몸에 지닐 수 있었고, 1226년 10월 3일 유언을 마친 프란치스코는 요한 복음의 수난기를 읽게 하였고, 자신은 시편 43장을 노래하며 저녁에 포르치운쿨라에서 임종하셨습니다. 그의 유해는 10월 4일 아시시에 있는 산 조르죠 성당에 안장되었습니다. 2년 뒤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230년 5월 25일 엘리야가 그를 기념하여 지은 지금의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이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오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을 맞아 좀 덜 먹고 덜 쓰고 욕심을 줄이는 삶을 살 때 우리 삶이 더욱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어리석은 부자 청년이 아닌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